판례 요약
국가예방접종사업의 백신 조달 입찰에서 다른 업체에 들러리 참여를 부탁한 사건입니다. 항소심은 백신을 독점 공급하는 계약과 필수 제출서류 때문에 다른 업체가 실제로 경쟁하여 낙찰받을 수 있었는지를 따졌습니다. 경쟁제한 효과와 입찰방해의 고의 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이 이를 유지했습니다.
01사건 개요
국가예방접종사업에 사용할 특정 백신의 조달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당 백신은 제조·수입사와 공동판매계약을 체결한 국내 업체들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유통했습니다. 입찰에는 다른 업체도 참여할 수 있었지만 최종 낙찰자가 되려면 개찰 후 5일 이내에 제조·수입사가 발급한 공급확약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공동판매사 관계자들은 단독 응찰로 입찰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업체들에 높은 가격으로 들러리 입찰을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검사는 이를 부당한 공동행위와 입찰방해로 기소했습니다. 1심은 유죄로 보았으나 항소심은 백신 공급계약과 실제 조달 과정을 상세히 검토한 뒤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02쟁점
가. 형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실질적인 경쟁자에 해당하는지
입찰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것과 계약을 이행할 물량을 확보하여 최종 낙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제조사의 공급확약서를 다른 업체도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었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나. 들러리 참여로 가격이나 경쟁이 달라졌는지
그 행위가 없었다면 더 낮은 가격이나 다른 거래상대방이 정해질 가능성이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그러한 경쟁을 해친다는 점을 인식했는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03판결
가. 공급확약서는 단순한 행정서류가 아니었습니다
항소심은 공동판매계약의 독점적 유통권, 제조사 관계자들의 진술과 실제 발급 사례를 검토했습니다. 제조사들은 다른 업체에 공급확약서를 발급하면 기존 계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인식했고, 정부총량구매 방식에서는 공동판매사와 무관한 업체에 발급한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업체를 검증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구조에서 개찰 후 5일 안에 필요한 절차를 마칠 가능성도 낮았습니다. 따라서 다른 업체가 입찰에 들어올 수 있다는 추상적인 가능성만으로 실질적인 경쟁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나. 계약구조와 조달 방식의 변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정부가 민간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물량까지 일괄 구매하게 되면서 입찰은 해당 백신의 전체 공급과 연결되었습니다. 공동판매사는 자신의 독점 유통권을 다른 업체에 넘길 경제적 이유가 없었고, 다른 업체 역시 공동판매사로부터 더 비싸게 사서 더 낮은 낙찰가격으로 공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기존 공동판매사와 함께 검증받은 계열회사나 공동수급체가 참여한 사례도 있었지만, 법원은 이를 독립적인 제3의 업체가 자유롭게 공급확약서를 받은 사례와 구별했습니다.
다. 들러리가 예정가격을 높였다는 설명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정가격은 복수 예비가격의 추첨 결과를 평균하여 정하는 구조였습니다. 들러리가 높은 금액으로 투찰했다는 사실만으로 예정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들러리 없이 진행된 입찰이나 수의계약에서도 동일한 단가가 유지된 자료는, 이 사건 행위 때문에 가격이 높아졌다는 주장에 의문을 남겼습니다.
라. 사업 일정과 관계자들의 인식도 고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들은 백신의 적시 공급을 위해 빠른 낙찰을 요구했고, 내부적으로도 독점 공급구조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항소심은 이러한 경위와 계약구조를 종합하여, 실질적인 경쟁을 배제하거나 낙찰가격에 부당한 영향을 준다는 고의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확인하면서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04의의
이 사건의 무죄 이유는 들러리 입찰이 관행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독점 공급계약, 공급확약서 발급 가능성, 전체 물량 조달 방식과 가격 결정 구조를 검토한 결과, 이 사건에서 처벌에 필요한 경쟁제한성과 입찰 공정 침해 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쟁자가 실제로 낙찰받을 수 있는데 경쟁을 피하려고 들러리를 세우는 사건과는 전제가 다릅니다. 입찰 관련 형사책임을 검토할 때 참가자 수나 형식뿐 아니라 물품 공급 가능성과 가격 결정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