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용 공고를 보고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나중에 현금을 받아 전달하는 일로 바뀌었다면, 처음 지원한 업무만으로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일로 이해했더라도 이후 어떤 지시를 받고 무엇을 알게 됐는지가 별도로 문제 됩니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 사건에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돈을 받았나요?”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돈이 사기로 받은 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업무를 계속했는지, 가담 방식과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를 당시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1. 처음 채용된 경위와 실제 수행한 업무를 나누어 보세요
채용 공고, 지원 내역, 계약서, 담당자와의 대화는 처음에 일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자료입니다. 그러나 계약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현금 수거와 송금이 모두 정상적인 업무로 평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도10141 판결에서는 부동산 시장조사 업무로 시작한 뒤 현금 수거 업무가 추가된 사건이 다뤄졌습니다. 피고인은 금융기관 관련 서류를 출력해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돈을 나누어 송금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업무 내용과 수행 정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범죄 인식을 부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이 사례의 쟁점은 채용 형식보다 업무가 변한 뒤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였습니다. 따라서 처음 지원할 때의 설명과 돈을 받기 직전·송금 직전의 설명을 같은 시간대의 자료처럼 섞어서는 안 됩니다. 나중에 발견한 이상한 지시가 언제부터 등장했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2. 이상하다고 느꼈다는 사정과 범죄를 인식했다는 판단은 같지 않습니다
형사책임에는 범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부주의했다는 설명만으로 사기죄의 고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본인이 “몰랐다”고 말한다고 범죄 인식이 바로 부정되는 것도 아닙니다(형법 제13조 참조).
미필적 고의가 문제 될 때에는 사기 범행일 가능성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고 행동했는지가 검토됩니다. “혹시 이상한 일인가?”라는 일시적인 의문, 그 의문에 대한 설명을 믿은 경위, 반복되는 비정상적 지시를 알고도 계속한 상황은 서로 구분해 살펴야 합니다.
판례는 채용 과정, 현금 수거 경위, 업무의 반복성과 규모, 제3자 개인정보를 이용한 송금, 보수, 피고인의 경험 등 여러 사정을 함께 검토합니다(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도10141 판결 참조). 어느 한 항목에 해당하면 곧바로 유죄라는 점검표가 아니라, 당시 인식을 추론할 자료들을 종합하는 기준입니다.
대화 기록에서는 질문과 답변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수거자가 업무를 의심하며 물었는지, 지시자가 무엇이라고 답했는지, 그 뒤 지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함께 확인하세요. 불리해 보이는 문장을 제외한 일부 화면만 제출하면 대화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시 내용과 실제 실행 내용을 대조할 수 있도록 원본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공동정범과 방조범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검토됩니다
현금을 받거나 전달했다는 이유로 가담자 모두가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범행을 함께 수행한 공동정범인지, 다른 사람의 범행을 도운 방조범인지 구체적인 가담 정도를 확인해야 합니다(형법 제30조, 제32조 참조).
역할을 설명할 때에는 “수거만 했다”는 표현을 넘어서 피해자에게 어떤 신분으로 말했는지, 서류를 제시했는지, 지시 내용을 스스로 조정했는지, 다른 가담자와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를 정리해야 합니다. 분담한 역할이 전체 사기 과정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방조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방조로 평가될지, 공동정범으로 평가될지는 본인이 붙인 업무 명칭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범죄 인식과 가담 방식에 관한 증거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4. 조사 전에는 ‘언제 무엇을 알았는지’를 기록으로 설명하세요
지원일, 최초 업무일, 현금 수거 지시를 받은 날, 금융기관 명의 서류를 받은 날, 송금 방식이 바뀐 날을 시간 순서로 적어보세요. 각 시점에 채용 공고·대화·파일·거래내역 중 무엇이 남아 있는지 연결하면 인식이 형성되거나 달라진 과정을 검토하기 쉽습니다.
수거 장소와 금액, 전달 상대, 받은 보수는 실제 기록과 맞추고,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모른다고 구분해야 합니다. 계좌거래와 현금 전달 기록의 금액을 억지로 맞추거나, 지시를 내린 사람과 진술을 조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범죄 가능성을 뒤늦게 알았다면 추가 수거·송금 지시를 계속 수행하지 말고, 대화와 기기·파일을 보존한 상태에서 법률 검토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초기 진술 전에 시간대를 구분하는 이유도 유리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실제로 알았던 사실과 사후에 알게 된 사실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